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중 경쾌하고 힘있는 합창곡 [투우사의 합창] nwc.
나무위키, 부분) 라 트라비아타는 사실 베르디의 개인적 사정과 겹치는 오페라이기도 하다. 그 개인적인 사정이 바로 이 오페라의 탄생 계기를 제공한 셈이 되었으니 말이다. 첫 아내였던 마르게리타 베리치와 세 아이를 잃어버리고, 홀아비의 몸으로 살아가던 베르디는 한동안 좌절을 겪다가 나부코에서 첫 히트를 거둔 후 명성을 쌓게 되고, 뒤이어 에르나니, 맥베스, 루이자 밀러, 아틸라를 작곡하게 되는데, 역시 좋은 평을 얻어갔다. 그 와중에 나부코 초연에서 아비가일레역을 맡았던 주세피나 스테르포니와 눈이 맞아서 동거에 들어갔지만, 그 동거가 순탄치 않았다.
우선 당시 사회가 재혼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주세피나를 만났을 당시 베르디는 이미 첫 번째 아내 베리치와 사별한 상태였긴 했지만, 베리치가 죽었어도 그녀의 아버지는 살아있던 상황이라서 베르디가 그의 후원자였던 장인어른의 눈치를 봐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베르디가 아닌 주세피나에 있었다. 주세피나 스테르포니는 베르디와 만나기 전에 테너 가수와 극장 지배인 사이에서 각각 아이를 하나씩 낳은 미혼모였고 이는 당시 사회에서 죄악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게다가 작곡가 도니체티와도 애정 관계가 있었다. 그녀의 이런 복잡한 남자 관계는 일찍 아버지를 잃고 가족을 부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스폰서의 지원으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연예인 가장이라 할 수 있다.
그래도 서로 사랑에 빠졌기에 1848년부터 동거하여 1859년 4월 29일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가까운 곳인 프랑스 중동부의 콜롱주수살레브(Collonges-sous-Saleve)에서 정식으로 결혼하기까지 11년이란 세월이 걸렸지만, 그 결혼까지 11년 동안 다른 이들의 눈치도 많이 살피고 살아가야 했던 것은 당연했다.
눈치 살피기 싫었는지, 베르디는 주세피나를 데리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가 한동안 거기서 임시주택을 마련하고 살게 된다. 다행히 파리에선 그런 눈치를 볼 사람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베르디와 주세피나가 동거를 하고 있었을 때, 파리에서는 뒤마 피스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멜로물 춘희가 큰 성공을 거두고 있었다. 베르디와 주세피나는 그 연극을 보고 공감하게 되었다. 특히 베르디는 너무 감동하여 눈물까지 흘릴 정도였다고 한다. 고급 창녀라는 이유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와 이뤄지지 못한 연극의 내용이 자신들의 상황과 너무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당시 리골레토와 일 트로바토레에서 더욱 명성을 쌓던 베르디는 연극을 보자마자 더욱 의욕을 불태웠고, 뒤마 피스의 연극을 오페라화 하기로 한다.
연극을 보고 수년간 파리에서의 생활을 마친 베르디와 주세피나는 이탈리아로 돌아오게 되는데, 복귀하자마자 베르디는 자신과 절친한 각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에게 파리에서 감상했던 뒤마 피스의 연극 내용을 오페라에 맞게 각색해달라고 의뢰한다.
베르디는 뒤마 피스의 연극이 정말 맘에 들었는지 작곡을 할 때도, 뒤마 피스의 원작에 충실한 재현을 하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하여 뒤마 피스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오페라는 '라 트라비아타'라는 제목으로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극장에서 초연을 가지게 된다. 때는 1853년 3월 6일.
그러나 전작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와는 달리 베네치아 극장에서 초연된 "라 트라비아타"는 이탈리아 오페라 역사상 최악의 실패작이라는 흑역사로 찍히고 만다. 그것도 초연하자마자. 초연 당시에 출연한 가수진들이 미스캐스팅이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라 트라비아타" 초연 당시의 비올레타 역을 맡은 살바니 도나텔리는 결핵을 앓는 청순한 이미지의 여성 역과 전혀 맞지 않은 비대한 몸집이었고, 알프레도역을 맡은 당시의 테너 가수는 감기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풍문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라 트라비아타" 초연이 실패한 것은 이 때문만은 아니다. 더 큰 요인은 오페라 배경과 당시 사회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스토리에 있었다. "라 트라비아타"의 배경은 1850년대의 파리로, 이 오페라 이전에 나왔던 거의 모든 유럽 오페라들은 빈첸조 벨리니의 노르마의 경우 로마가 갈리아 지방을 지배하던 시기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 작품이고, 가에타노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는 잉글랜드의 왕 헨리 8세의 두 번째 아내 앤 불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구노의 파우스트는 괴테의 원작을 바탕으로 삼고 있으며,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경우 프랑스에서 전해지던 설화를 바탕으로 작곡된 오페라였다. 라 트라비아타가 나오기 이전에는 신화, 전설이나 역사물 희곡에서 따와 그것을 배경으로 삼은 오페라가 많이 나왔다고 얘기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의 경우 자신이 사는 동시대를 배경으로 삼았으니, 이는 당시로서는 최초의 현대 오페라를 작곡한 셈이 되었지만, 그만큼 오페라 배경은 굉장히 파격적이라 생각되었는지 관객들에게 알러지 반응만 일으켜 버렸다고 한다. 시대를 뛰어넘은 시도라 볼 수 있겠다. 스토리에서도 사교 나비와 부잣집 도련님의 멜로물이어서 당시 관객에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 두 가지 요인이 "라 트라비아타" 초연 실패의 더 정확한 원인이라 볼 수 있다.
세계 언론은 "라 트라비아타"가 실패한 것에 대해 베르디를 아주 비꼬았는데, 이에 베르디는 흥분한 상태로 거만하고 포스있는 말투로 "내 오페라가 틀리지 않았다. 이해를 전혀 못한 그들이 틀린 거다. 이 오페라가 다시 무대에 올려지면 후에 나를 대표하는 작품이 될 테니 두고 봐라."라고 되받아쳤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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