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18을 신성시하며 끌어안고 있는 광주여! 무기고와 교도소 습격, 장갑차 탈취, 계엄군 피습, 유언비어 유포 등 엄연히 일어난 사실에 대해 그 잘난 광주 유공자 어느 하나 지가 했다고 나서는 이 없다. 그러면서 북괴군 침투설은 왜 부정하는가? 했다고 하는 놈은 없는데 그런 일은 어찌 일어 났을까? 당치않은 억지에다, 현재까지도 숱한 유공자를 국가가 아닌 광주시가 쏟아내며, 이에 대한 시비조차 죄로 물으려는 횡포한 월권을 누가 주었는가? 보라, 이들이 정치 권력화되어 이젠 대놓고 온갖 패악을 친다. 우리들이 죽기전에 이들의 죄악의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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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온글) ☆'518민조위' 지령1호☆ "무등산 진달래"
■ "광주라 무등산에 겨울을 이겨내고/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네/ 동강 난 조국 땅을 하나로 다시 잇자/ 억세게 싸우다가 무리죽음 당한 그들/ 사랑하는 부모형제 죽어서도 못 잊어/ 죽은 넋이 꽃이 되어 무등산에 피어나네"
'무등산 진달래' 1절 가사다. 북한에서는 518 이후 등교하는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확성기로 들려준다. '조선기록영화촬영소'가 1980년에 제작한 518기록영화 '군사파쇼도당을' 반대하는 광주민주항쟁'과 로동당출판사가 발행한 '광주의 분노', 그리고 조총련이 발행한 '찢어진 깃폭'이라는 세 개의 매체에 475명의 전사가 광주에서 떼죽음을 당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 노래는 그 475명의 영혼이 사랑하는 부모·형제를 떠나 무등산 진달래로 붉게 피었다는 구슬픈 찬미가로 탈북자 박승원 상장이 제작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서울에서는 1989년 6월 28일 전대협 의장 임종석이 한양대학교에서 '평양축전 참가를 위한 범국민 전국대회'를 열고 '백두에 피 뿌려진 진달래 가슴 안고 통일의 화신되어 총진군하자'라는 플래카드를 게재했다. 475명이 백두혈통을 지키기 위해 목숨 바친 애국전사들과 궤를 같이한다는 뜻이었으며 이후 임수경은 수배 중인 그를 대신하여 곧바로 동유럽을 경유해 평양으로 간다.
■ '민간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민조위)의 출범식은 2023년 7월 19일이었지만 실질적인 출발점은 6년 전이었다. 태극기를 들고나서, 518을 직접 겪은 광주네기들과 집압군으로 참여했던 예비역 장교들, 그리고 당시 위 보도 내용을 지득한 전직 국정원 요원들이 합류하게 되었으니 475명 전사들을 노래한 '무등산 진달래'가 기폭제였던 셈이다. 거기에 518사태를 과학적 기법으로 설명한 지만원 박사의 집요함이 콘크리트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역사의 진실이 묻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한특수군의 침투 루트를 묘사한 논픽션 '보랏빛 호수'를 따라 답사를 시작했을 때 안내는 광주 출신으로 진압군 20사단 특공대장을 역임한 김덕수 동지가 맡았다. 2~30명의 소단위 특수군이 침투했을, 달(月) 모습이 풍요로운 영광 낙월도에서 동지들은 밤을 새웠고, 간첩들의 침투로로 익히 알려진 백수해안도로 끝자락 백바위도 수없이 탐사했다. 그들이 시내로 잠입하기 전에 승려로 위장한 간첩 손성모의 접대를 받으며 하룻밤 머물렀다는 무등산 자락의 '증심사'도 동지들은 빠뜨리지 않았다.
평양방송이 실시간으로 울려 퍼진 충장로를 비롯한 금남로 도청이나 전일빌딩은 손바닥을 뒤집듯이 환하다. 특히 옛날 전투교육사령부가 있던 쌍촌동께에 조성되어있는 '518 기념공원'내에 있는 입구가 관을 뒤집어 놓은 듯한 모습을 한 반지하 형태의 '추모승화관'에서는 새로운 발견품에 가슴이 설레었다. 가로 10센티미터, 세로 5센티미터 크기의 까만 오석에 새겨진 4,296명 각각의 518유공자 명단을 보고서다. 전체를 카메라에 담아와 공안에 정통한 전직 대공요원의 수작업으로 유공자의 진위를 가려내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끝났을 때 설마 했는데 정치계와 종교계, 교육계까지 80~90%를 상회하는, 가짜가 진짜보다 더 많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 이런 사전정보를 획득한 자신감이 있어 문재인이 추진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진실로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알고 떼를 지어 응모했으나 모두 탈락했다. 당시 국민의힘당은 전문성과 증거까지 갖춘 우리를 좌파가 씌운 '극우 태극기부대'라는 프레임을 차용하여 벌레 씹듯 팽개치고 518의 '5' 자도 모르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을 비롯한 옷 색깔만 야당인 껍데기들을 조사위원으로 추천했다. 송선태가 위원장이었다.
'518은 광주시민의 순전한 민주화운동이었는데 계엄군은 전두환의 발포 명령으로 무고한 시민을 학살했다'는 발표문은 장관급에 해당하는 송선태가 지향한 목표점이다. 518 당시 전남대 복적생이었던 그는 민주화운동을 한 게 아니라 무장봉기 모의를 주도했다. 그가 작성한 '자유노트'는 그 모든 것을 말해준다.
'방송국과 무기고, 공공기관을 죽창을 동원해 접수하고 탈취한 무기로 도청을 점령한다'는 끔찍한 작전계획이 518 이전에 이미 '자유노트'에 작성되었고 또 그대로 실행되었다. 송선태와 그의 동료들만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지리에 어두운 북한특수군 단독만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자유노트'를 작성한 그가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를 이끈다는 것은 도둑이 재판관이라는 배척 사유에 속했지만 문재인 치하에서 법은 항상 그들의 것이었고 윤석열 때도 그러하다.
■ 지금까지 4년간 그들이 조사한 내용은 국민적 관심이 증폭된 가짜유공자 색출 문제가 아니었고 5회에 걸친 광주교도소 습격 사건 또한 그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들이 성과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단 4시간 만에 전남 도내 17개 군 44곳의 무기고를 습격하여 2개 사단이 무장할 수 있는 총기류와 다이너마이트를 탈취한 65명의 광주시민군들이 쓴 자인서를 확보했다는건 데 도대체 지휘체계도 안 갖춘 오합지졸 민간인들이 어떻게 하였다는 것인지 신출이 귀몰하다.
투입된 시간과 예산, 인원에 비해 너무 미미한 성과에 전전긍긍한 조사위는 북한개입설을 주장하는 탈북민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에는 1순위였다. 북한특수군의 개입 내용을 '보랏빛 호수'라는 책을 통해 폭로한 탈북작가 이주성을 수차에 걸쳐 위원회로 소환해 픽션임을 인정하라고 강요했지만, 작가는 끝내 거절했고 그의 기세에 눌려 위원회도 이를 부인하지는 못했다. 주인공으로 묘사된 탈북민은 자식들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자기는 특수군이 아니라고 자술서를 썼다.
7월 19일, '518민조위' 출범식을 겸한 세미나가 열리고 난지 겨우 며칠 후, '문재인의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세미나 발제자인 전 북한 주 체코무역대표부 김태산 대표에게 소환장을 보내고 불응할 경우 처벌이 따른다고 으름장까지 놓았다. 체코에서 가족을 이끌고 아무런 사전 교감도 없이 독일을 경유하여 인천공항에 북한 여권만 달랑 들고 입국할 만큼 대담한 김태산도 보수우파 정권이지만 종북좌파들이 땅땅거리면서 자기를 소환하니 남한 땅이 더욱 외로웠을 터였다. 젊은 2명의 '518민조위' 동지들이 건물 앞까지 김태산 동지를 호위했다.
■ 종북좌파로부터 나라를 지켜내야 한다는 애국심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518민조위'가 김태산 동지를 위해서 하나 더 해준 게 있다. 혹시 저들이 협박이나 위해를 가할 것에 대비해 십시일반으로 갹출한 애국자금 중 급히 인터넷 시장에서 구입한 4만 5천원 짜리 중고 소형녹음기를 쥐여준 것이었다. 김태산은 녹음기를 꺼내 보여주며 녹음하겠다고 했다. 그들은 자기들도 안 할테니 하지 말라고 극구 만류해서 조사는 시작되었다.
'518유공자는 대한민국에는 없다. 만약에 북에 의에 남북통일이 된다면 당시의 특수공작원들이 너희들이 무슨 일을 했다고 유공자냐며 즉결처분 해버릴지도 모른다.'는 김태산의 증언은 조사실에서도 그대로였다. 그 증거로 내놓은 게 광주시민들마저도 알 수 없는 당시 상황이 어떻게 실시간으로 로동신문에 상세하게 보도 될 수 있었겠느냐다. 그의 증언은 8월 10일 자 스카이데일리가 사실로 입증했다. 518 당시 2명의 북한 기자가 미리 입국하여 취재한 기사를 일본의 조총련계 신문사에 송고하고, 북한의 '로동신문'이 그대로 게재했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518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거나 증언 등을 밝히면 5년 이하의 징역형과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현행법에 못을 박았고 최승재를 제외한 국민의힘 의원들도 공천의 족쇄에 떨지만, 김일성의 지령문이 북한 기록물 보관실에 존재하며 518을 기념하는 각종 명칭이 북한에 즐비하고 매년 기념행사까지 치른다는 사실과 함께 당시의 상황이 너무 상세하게 파악되어 있기에 어려운 일은 아니다.
■ 파악된 내용의 일부는 이렇다. 80년 5월 22자 북한 '로동신문'은 조선중앙통신 보도 내용 4건을 게재했다. '괴뢰당국은 광주의 괴뢰군 부대들을 후원하기 위하여 서울에 진주시킨 2개 보병연대를 광주로 출동시켰다.' 로 시작되는 기사는 엄청난 취재력을 발휘한다. 시위대의 거센 공세에 밀려 20일 밤 광주역에서 철수한 공수부대를 대신해 지원 차 광주로 향하던 20사단 62연대 지휘부 차량이 21일 08시 40분 광주 길목인 광천 사거리에서 복면을 한 정체불명의 괴한들로부터 습격당해 불에 탄 3대를 뺀 지프차 11대와 무기를 빼앗긴 사건을 로동신문은 실시간으로 보도한 것이다.
특종은 계속된다. '광주의 폭동군중이 라주경찰서의 탄약고를 습격'이라는 헤드라인과 경기관총과 실탄을 탈취, 경기관총으로 군대를 사격'에 이어 '목포에서도 2만 명이 반정부 시위'라는 부제목을 달았다. 박준병 사단장기(旗)까지 탈취해 '무장을 갖춘 그들은 이어 전남대학교 부속병원 옥상에 경기관총을 걸어놓고 시민 탄압에 동원된 군대를 사격하였다.'고 보도했다. 로동신문이 5월 22일 자에 말이다.
국내 언론은 물론이고 용감한 외신기자들도 총을 든 괴한들의 위력감에 근접할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현장을 로동신문은 자랑스럽게 써댔다. '518민조위'는 그들이 자랑한 성과물을 바탕으로 진실을 규명하는 조사를 함에 일사불란하다. 동네 친구가 아니다. 고등학교 친구도 아니다. 천명을 알게 된다는 지천명(知天命)까지 축적된 영혼의 부피와 결이 맞아떨어진 이념의 동지다. 때문에 무서울 것이 없다. 어떠한 희생도 치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대부분의 광주시민을 일깨우는 일이고 자유대한민국을 똑바로 세우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분명한 원칙이 있다. 북한은 518이 김일성의 교시였음을 로동신문 등 선전매체를 통하여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면서도 광주교도소를 습격하다 사살된 475명 시체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킨다. 증거물이 없는 셈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귀신같이 사라진 시체들은 과연 어디에 있는가라는 지난한 작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왜 그들은 '무등산 진달래'로 피어야만 했던가. 그들의 원혼도 함께 풀어줘야 한다. 연분홍 진달래가 곱게 피어나면 연고도 없이 망월동에 묻힌 열두 송이 이름 모를 그들도 꽃이 될 것이다! 관 위에 던져진 꽃!
2023년 8월, 광복절 날에
찔레꽃도 따라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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