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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와 함께

김성태의 합창곡 nwc

by 눈솔-강판순 2022. 11. 26.

동심초, 산유화 등으로 유명한 김성태 선생의 합창곡 nwc 악보 등.

한송이 흰 백합화 합창nwc,

즐거운 우리집 합창nwc.

+ 추억 nwc

+독창 동심초 nwc와 산유화 nwc도 함께 싣는다

추억(혼4김성태)3.n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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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우리집(혼4김성태)2.n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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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우리집(혼4김성태)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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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흰백합화(김성태4부)2.n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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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흰백합화(김성태4부)2.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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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김성태曲f)2.n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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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유화(김성태曲)4.nw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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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 김성태(金聖泰, 1910년~2012년)는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지휘자, 음악교육가이다. 호는 악석(樂石), 요석(謠石), 낙석(洛石), 산남(山南)이다.
생애: 경성부의 개신교 가정에서 출생하였고 경신중학교와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했다. 이때까지는 독학으로 음악을 공부했으며, 연희전문에서 만난 현제명의 영향으로 대학 졸업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 고등음악학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작곡을 공부한 음악가였다. 귀국한 뒤 경성보육학교 음악주임을 시작으로 고려교향악단 지휘자를 지내며 홍난파, 현제명 등과 더불어 한국의 서양음악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해방 후에는 현제명이 서울대학교에 음악대학을 설립했을 때 함께 참여하였다. 1955년에는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학교 음대에서 작곡 이론을 연구하였고, 연세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음대 학장,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한국 음협 고문, 고려 및 서울교향악단 객원지휘자를 역임하였다.
대표작: 작품으로는 〈교향적 기상곡〉을 비롯하여 〈현악 4중주〉, 〈현악합을 위한 모음곡〉,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소나티나〉 등이 있으며, 교성곡(交聲曲) 〈비바람 속에〉와 연가곡(連歌曲) 〈꽃〉, 〈소월(素月) 가곡집〉, 〈산유화〉, 〈이별의 노래〉 외 수십 곡의 가곡 등이 있다. 〈즐거운 우리집〉, 〈동심초〉, 〈못잊어〉 등의 가곡도 유명하다. 동요 잘자라 우리아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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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초는 과연 풀이름인가
새만금일보 2017/01/05 
작곡가 김성태 선생은 지난 2012년 4월 21일 향년 102세로 별세했다. 서울 음대 교수를 지낸 그는 1910년생이다. 1930년대에 동요집 < 새야 새야 파랑새야 >를 내며 작곡가로 데뷔한 이래 가곡 <동심초>, <즐거운 우리집>, <꿈>, <한송이 흰 백합화>, <이별의 노래> 등 주옥같은 노래를 남겼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작품은 <동심초>이다.
<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 무어라 맘과 맘은 맺지 못하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 이 노랫말의 원시는 중국 당나라 때의 유명한 여류시인인 설도(薛濤)의 시 <춘망사(春望詞)> 가운데 세째 수(首)를 번역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동심초'라는 것은 풀이 아니라 편지지라는 사실이다. 이 노래말은 김소월의 스승인 안서 김억(岸署 金億)이 번안한 것이다. 원래의 한시는 4수로 된 '춘망사(春望詞, 봄날의 바램)'라는 5언절구이다.
攬結草同心 풀을 따서 한 마음으로 맺어 (사랑의 편지 써서는 곱게 접어)
將以遺知音 지음의 님에게 보내려 하네 (내 맘 아실 이에게 보내려 하네)
春愁正斷絶 봄 시름은 그렇게 끊어 졌건만(편지 쓰는 동안에는 행복했건만)
春鳥復哀吟 봄 새가 다시 슬피 우네 (쓴 편지 부칠 길이 없어 슬퍼지네)
風花日將老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그리워하다가 세월만 흘러가는데)
佳期猶渺渺 만날 날은 아득타 기약이 없네(만나볼 기약은 아득하기만 하네)
不結同心人 마음과 마음은 맺지 못하고 (한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인데)
空結同心草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부질없이 편지만 쓰면 무엇하나)
'동심초'의 가사는 바로 이 제3수를 우리나라의 말로 맛을 살려 다시 쓴 것이다. 노랫말을 보면 "꽃잎은 하염없이 바람에 지고"로 시작한다. 그래서 "동심초 꽃잎이 바람에 지는구나"하고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사전에도 동심초라는 단어는 없다. 중국말 사전에도 없다.
동심초는 꽃이나 식물 이름이 아니다. 동심초는 바로 연서(戀書), 곧 러브레터를 의미한다. '풀 초(草)'가 들어간 것은 종이는 풀로 만들기 때문이다. 러브레터 접는 방식도 바로 돗자리 짜는 풀의 매듭방식에서 출발한다.
不結同心人도 김억의 번역처럼 마음과 마음을 맺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한 마음이건만 맺지 못할 사람' 이 바른 번역이다. 바로 윗 구절에 이미 "내 마음 아시는 분께 보내려 하네" 가 나오기 때문이다. 空結同心草도 "한갖되이 풀잎만 맺으려는고" 가 아니다. "헛되이 편지만 접었다가 폈다 하네"가 바른 뜻이다.
그래서 전체의 바른 번역은‘한 마음이지만 맺어지지 못할 사람이라 그걸 알면서도 헛되이 연애편지만 썼다가 찢었다가 하네 (혹은 접었다 폈다하네)’가 맞다. 부치지도 못할 편지 써놓고는 하릴없이 접었다고 펴고 접었다가 펴고 하는 여인의 애타는 현실을 그린 것이다.
同心結은 옛날 연애편지를 접는 방식 또는 그 편지이다. 사랑의 정표 의미로 화초나 물건으로 만든 여러 가지 매듭, 혹은 장식물의 총칭이기도 하다. 여기서 同心은 한마음이나 막연한 상징물이 아니다. 同心結로 마음을 담은 러브레터이다.
한시의 원작자 설도(薛濤 대략 770~832)는 중국 당대(唐代)의 유명한 기녀이며 문학인이다.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총명하고 말재주도 뛰어났다. 당시 일류 문인들인 백거이(白居易), 원진(元稹), 유우석(劉禹錫), 두목(杜牧) 등과 교류가 많았다.
이들 중 원진과의 정분은 각별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감정을 붓끝에 모아내어 시를 썼다. 그녀의 시는 감정이 절절이 묻어나는 명작이 많아 지금도 심금을 울린다. 약 450편의 시를 썼지만 90수가 전하고 있다.
동심결과 동심초에 대한 설명은 중국의 설도전(薛濤箋)이라고 하는 편지지에서도 알 수 있다. 설도는 만년에 시성 두보(杜甫)의 초당으로 유명한 성도(成都)의 서교(西郊)에 있는 완화계(일명 백화담) 근처 만리교 근방에서 은거했다. 이 근처는 양질의 종이가 생산되는 곳이다.
그는 심홍색 종이를 만들게 하여 그것을 이용하여 촉의 명사들과 시를 주고받았다. 풍류인들 사이에 평판이 높아, 이런 식의 종이를‘설도전(薛濤箋)’또는‘완화전(浣花箋)’이라 하여 많이 유행했다. 따라서 동심초의 바른 번역은 '사랑의 편지' 혹은 현대식으로 러브레터가 맞다.
김억은“시의 번역은 번역이 아니라 창작이며, 역시(譯詩)는 역자 그 사람의 예술품”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가곡 <동심초> 1절 뿐 아니라 2절로 불리우는‘바람에 꽃이 지니’역시 원문을 뛰어넘는 또 다른 예술품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