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와 사회

김영삼, 애국심보다 자긍심

by 눈솔-강판순 2022. 12. 10.

김영삼의 맹점은 애국심보다 자긍심을 내세운 자만에 있다. 한때 지지율이 80%를 넘으면서 금융실명제와 하나회 척결에다 "버러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반일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결국 IMF 구제금융을 못 피한데다, 그 잘난 민주화를 앞세워 비전향장기수를 북송하고, 5.18사건과 동의대사건 등을 민주화로 그냥 덮었고, 마지막엔 사 감정으로 이회창을 저지하려 이인제를 내세워 김대중에게 정권을 넘겨준 죄가 매우 크다. 이를 가르켜 좌파의 숙주노릇을 했다 한다.
덧붙여, 개인적으로는 누구처럼 거짓말이나 횡령 등의 인격적 추함을 드러내지 않았다만, 그 아들 김현철의 죄에 대해 너무 관대하였단 비난을 면키는 어렵다.

 

또다른 김영삼의 과오, 우파의 탈을 쓴 배신자들을 길러낸 점


=========
위키) 김영삼(金泳三, 1927년~2015년)은 제14대 대통령(1993/2/25~1998/2/24)이다. 역대 최연소인 만 25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어 9선 의원을 지내면서 김대중과 민주 진영의 지도자로 활동했다. 호는 거산(巨山), 본관은 김녕(金寧)이며, 거제군 출생이다.
1954년 거제에서 만 25세로 제3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며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되었다. 9선 국회의원을 지내며 유신정권의 야당 지도자로서 민주당 원내총무, 민정당 대변인, 신민당 원내총무로 활동하며 민주화 운동을 이끌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금융실명제(1993년 8월 12일)를 도입하고 차명 부정 계좌를 단속 및 처벌하였으며, 지방자치제를 전면 실시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법통 명문화 등 역사 바로 세우기 정책의 일환으로 옛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 철거하였고, 국군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했다. 또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비자금을 수사하여 처벌하였고, 군사반란과 5.17 쿠데타 및 5.18 민주화 운동 진압의 책임을 물어 군사 정권 관계자들을 사법처리하였다. 1997년 외환위기로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하였다. 

긍정적 평가: 목사 강원룡은 "그가 대통령에 취임 후 개혁에 착수했다"라며 "하나회, 율곡 비리에 과감하게 손을 댔고, 8월 12일에는 전격적으로 금융실명제를 단행했다. 국무위원들의 재산도 공개되었다. 이런 조처들이 취해지자 그의 지지율은 90퍼센트가 넘게 치솟았다. 그가 대선 때 받은 42%에 비해 두배가 넘는 것이었다. 택시기사들은 '요즘 살맛이 난다' 며 좋아했다"고 평가했다. 팬클럽으로 "YS 사사모"가 있다. 1980년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국제연감 1979년의 인물에 선정되기도 했다. 

부정적 평가: 3당 합당을 통한 정권 획득에 대한 비판과 재임기간 한보비리와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일으킨 점은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1990년 민주정의당과의 3당 합당에 참여한 점을 놓고 비판이 제기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반론으로 김대중이 1987년 통일민주당을 탈당한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재임 말년에 발생한 차남 김현철 등과 홍인길 등 측근들이 연루되 권력형 비리사건, IMF 구제금융사건 초래 등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1994년 북미 제네바 북핵 합의 당시 김영삼 정부는 "핵을 가진 자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는 논리로 북한과의 대화를 외면했는데 결국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이뤄진 북미협상에서 경수로 제공문제가 합의됐다. 김영삼 정부는 경수로 건설비용 46억달러 가운데 70%에 해당하는 36억달러를 부담했다. 이에 대해 최근 미국의 경수로 공사 중단 요구에 따라 천문학적인 액수를 날리고 말았을 뿐만 아니라 대화에는 참여하지 못한채 비용만 부담한 '들러리'라는 비난을 받았다. 군사정권 관계자 처벌과 관련, 법치(法治)에 따른 원리·원칙보다는 지나치게 여론재판에 의존함으로써 기득권 내부의 저항을 야기시켰고, 형평성을 잃는다는 비판을 받게 되었다. 전 신민당 총재 이민우는 말년에 김영삼이 이회창을 공천해 놓고는 자기 아들(김현철)을 2인자로 만들려고 이인제를 밀었다며 정치하는 사람이 그럴 수는 없는 법이며, 정치 도의도 없고, 신의도 없다며 비난하였다. 그 외에 새정치국민회의 정한용 의원 등으로부터 비자금 1000억원 조성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곧 묻혀졌다. 그 외에 "YS는 오랜 세월 야당지도자로 있으면서 민심을 잘 읽는 정치를 해왔다. YS는 대통령이 된 뒤 안기부의 정치활동 간여 금지를 골자로 한 안기부법 개정을 단행하는 등 정보정치와 확실한 거리를 두는 듯했다. 하지만 1년쯤 지나면서 안기부 정보보고서를 찾는 빈도가 늘어났다. 마약과도 같다는 정보에 중독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점점 민심의 추이에는 둔감해졌다."는 비판도 있다. 한편 군사정권 출신과 보수 세력은 그가 좌파의 숙주가 되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
좌파숙주였다 자백한 김영삼
뉴데일리/ 양영태 2008-11-21 
...김영삼씨는 지난 20일 전북 완주 우석대 특강에서 ‘하나회가 그대로 있었다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없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면서 마치 그가 김대중, 노무현을 대통령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떠벌렸다. IMF환란의 주범이었던 김영삼씨가 ‘하나회숙청’을 자기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고 꼽는 장면은 국군 통수권자였던 전직 대통령의 말 치고는 희대의 ‘코미디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테타를 주도했던 하나회는 구테타 방법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구테타)를 일으킬 수 있었다”면서 “수도사령관 혼자서도 한국 전체를 뒤집을 구테타를 할 수 있었다”고 말도 되지않은 기괴한 말을 아무런 부담없이 국민들 앞에서 함부로 주접을 떨고 있는 모습에서 한국정치인의 추악한 모습을 읽어내려 갈 수가 있다. 김영삼씨의 이러한 말은 군을 비하하는 무식한 자기도취에 취한 한푼짜리 토설에 지나지 않는다...
김영삼씨 말대로라면, 자신이 없었다면 10년 좌파정권의 시련이 없었다는 말뜻과 아주 동일하다. 미증유의 반헌법적 5·18특별법을 만들어 역사를 뒤집었던 김영삼씨가 좌파정권 10년을 만들어 놓은 것이 무엇을 그렇게 잘했다고 특강을 통해 떠드는지 참으로 개탄할 수밖에 없다. 차라리 김영삼씨 말대로 김영삼 대통령이라는 존재가 없었다면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없었을 터이고, 그렇게 됐으면 이 나라에 ‘이념혼란’이 오지 않아 좌파정권이 탄생치 않았을 것이라는 논리에 귀결될 법도 하다...

김영삼씨 업적은 2가지다. 첫째가 대한민국 성장동력을 끊어놓은 후, 이 땅에 IMF환란을 가져와서 이 나라의 자존심을 구기게 한 부끄러운 업적. 둘째가 자신의 말대로 좌파 정권 10년을 가져오기 위해서 좌파 숙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 매우 부끄러운 업적이다...

=========
1993년 미전향 장기수 이인모 씨 북한 송환
kbs 2018-05-10
=========

[5.18특별법]특별법,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바로세우기 의미[박광온]
imbc 입력 1995-11-26
... 김영삼: 오늘의 정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는 민주정부입니다...

=========
YS 최대의 過誤, 폭도를 낳은 양날의 칼 '민주화'
전체주의 추종 세력과 결합, 왜곡되고 변질된 숙주 '민주화' 분노와 투쟁 뿐
뉴데일리/ 오창균 015-11-24
1989년 5월 부산 동의대학교에서 시위 중 폭도로 변한 학생들이 경찰과 전경을 감금하고 불을 질러 7명이 불타 죽은 일이 있었다. 그 유명한 '동의대 사건'이다. 1990년 6월 대법원은 사건 관련 학생 31명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들은 방화치사죄로 최고 무기징역에서 징역 2년까지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하지만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 때 모두 사면됐다.

나아가 DJ 정권에서 사건 관련자들은 돌연 '민주화 운동자'로 둔갑했다.
방화치사범이 왜 갑자기 민주화 운동자로 바뀐 것인지 쉬이 납득하기 어렵다. 경찰과 전경 7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의 관련자들이 민주 헌정질서 확립에 기여하고 국민 자유와 권리를 회복시킨(민주화운동보상법) 유공자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동의대 사건 주범 등은 1인당 평균 2,800만원씩 보상금도 받았다. 당시 방화 학생들을 변호했던 이는 현(現)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인 문재인 변호사였다. 이에 반해 순직 경찰과 전경 유족들에게는 쥐꼬리 만 한 보상(공무원 연금법과 군인 연금법에 따른 368만~1,890만원)만 돌아갔다...


=========
권력·섹스·뇌물 그리고 ‘몰카’
시사저널 김현일 대기자 2013.04.03
길들이기용에서 폭로·협박용으로 진화
1997년 5월 당대 최고의 실세 김현철이 구속됐다. 현직 대통령 아들의 구속은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청와대와 내각은 물론, 검찰과 안기부 수뇌부를 꽉 잡고 있는 ‘소통령’ 앞에서 너나없이 설설 기었다. 김영삼(YS) 대통령 본인도 자신을 빼닮은 차남의 전횡을 어찌하지 못했다. 그의 비행을 대통령에게 직보했던 박관용 비서실장마저 청와대를 떠난 이후 현철을 가로막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심재륜 대검 중수부장이 현철을 잡아넣었다. 죄명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알선 수재 및 조세 포탈)...
=========

'정치와 사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비린내나는 구정물  (0) 2022.12.12
서훈과 瘍정철의 음모  (0) 2022.12.10
前 정권 알박기  (0) 2022.12.03
엠비씨를 폭파시키자  (0) 2022.12.02
전 정권의 어두운 그림자  (0) 2022.1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