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래와 함께

이영훈의 합창곡 nwc

by 눈솔-강판순 2023. 8. 19.

이영훈의 합창곡 nwc

+독창 빗속에서 nwc

 

빗속에서_이영훈2.nwc
0.00MB
광화문연가(합3g)이영훈2.pdf
0.19MB
광화문연가(합3g)이영훈2.nwc
0.00MB

 

붉은노을(혼5)이영훈3.pdf
0.23MB
붉은노을(혼5)이영훈3.nwc
0.00MB
붉은노을(혼5아카)이영훈2.nwc
0.00MB

 

옛사랑(4부)이영훈2.nwc
0.01MB
옛사랑(4부)이영훈2.pdf
0.22MB

 

이세상살아가다보면(이영훈4부)2.pdf
0.17MB
이세상살아가다보면(이영훈4부)2.nwc
0.00MB

 

가을이오면(혼6이영훈)55.pdf
0.25MB
가을이오면(혼6이영훈)55.nwc
0.01MB

 

 

나무위키) 이영훈

유재하와 함께 '한국형 팝 발라드의 개척자'라고 평가받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당시 국내 발라드계에서 전설적인 작사가,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다. 사망 2008년 2월 14일 (향년 47세)
생애: 서울시 중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 건너편에 위치한 이영훈 노래비.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영훈씨! 이제! 우리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은 영훈씨의 음악들과 영훈씨를 기억하기 위해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당신의 노래비를 세웁니다. 영훈을 사랑하는 친구들이. 2009. 2. 14."
이영훈은 1960년 3월 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굉장히 엄숙하고 엄중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편을 잡은 교사였고, 형은 의사였다고 한다. 조용하고 공부만 했던 집안으로 음악 소리가 들리는 건 상상할 수가 없는 집안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이영훈이 음악을 너무 하고 싶어 해서 그의 어머니가 70만원 되는 월급으로 58만 원짜리 피아노를 사줬다고 한다. 그는 그때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다고 했다. 무엇이든지, 어떤 음악이든지 그 피아노만 있으면 가능할 것 같았다고 했다. 중학교 때 이 피아노로 그의 히트곡 ‘소녀’, ‘사랑이 지나가면’을 작곡했다고 한다. 이영훈은 정규음악 수업을 받지 않고 독학으로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한 독특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고 바이엘, 체르니를 혼자서 독학했다. 하지만 그의 집안에서는 그가 음악하는 것을 심하게 반대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이 법 쪽 공부를 하기를 원했기에 집에 기타 소리가 나거나 하면 무척 화를 내기도 했으며, 기타를 부수기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영훈은 밖으로 많이 맴돌았다고 하며 집안에서 인정해주는 분위기도 아니고 '공부하라, 공부하라' 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가 유일하게 그를 지원해줬다.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피아노도 사줬고, 형이랑 누나가 공부하다가 조금 쉬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이영훈이 피아노를 조금이나마 연주하게끔 가족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처럼 그는 자신을 음악가로 만들어 준 사람이 어머니였다고 말했다. 유난히 신앙심이 깊었던 어머니는 막내아들의 앞날을 위해 늘 골방기도를 했고, 가족 모두 반대했던 음악가의 길로 들어섰을 때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주었다. 그리고 음악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결사반대했던 아버지와 다른 가족들과 달리 남몰래 늘 격려했다. "영훈아, 나는 네가 열심히 할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선택한 만큼 네가 책임져야 해. 그래도 엄마는 네가 착해서 참 이뻐."라며, 어머니는 독학으로 음악공부를 하는 아들의 부탁으로 70여만 원 되는 월급에서 서슴없이 58만 원 하는 피아노를 사 주었다. 그래서 믿어준 어머니에게 자신의 성공을 보여 드리고 싶어 했다고 한다. 이영훈의 어머니는 유방암으로 꼬박 3년을 투병하였다. 그가 처음 발표한 '난 아직 모르잖아요'가 10주 동안 각종 가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을 때 어머니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 있었다. 그는 잠깐 의식이 돌아온 어머니를 붙잡고 성공 소식을 알려드렸더니, "이젠 피아노 사준 돈 다 갚아"라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고. 그러나 결국 어머니는 2주 후에 운명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사주신 그 피아노로 곡을 만들었고, 골든디스크상을 세 번이나 받을 수 있었다.
이영훈은 원래는 연극, 방송, 무용 등에 사용하는 음악을 작곡하는 비교적 순수예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작곡가였다. 이영훈은 데뷔하기 전까지 교육방송 다큐멘터리 주제가를 작곡하거나 피아노 세션으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1984년 김의석 감독의 데뷔작인 단편 '창수의 취업 시대' 영화음악을 맡으며 작곡가로서의 서막을 올리며, 1985년에 대중음악 작곡가로 데뷔하게 된다. 작곡가로 데뷔하기 전, 이영훈은 영화와 미술 음악을 하면서 클래식 감성을 쌓아왔다. 그런 배경에서 나온 감각은 대중음악으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지속됐다.

한편 대학가요제 출신으로 1977년 가수 겸 MC로 데뷔한 이문세는 1집과 2집에서 '나는 행복한 사람'과 '파랑새'를 발표하지만, 가수보다는 오히려 라디오 DJ로서 명성을 더 얻고 있었다. 1985년 어느 날, 이문세는 신촌블루스의 엄인호를 만난 자리에서 새 앨범 작업을 위한 작곡가를 부탁하였다. 이때 엄인호는 마침 그의 연습실에서 작업하고 있던 신인 작곡가를 소개하게 된다.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간 이문세가 작곡가 이영훈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하며 "굉장히 수줍어하는 그에게 곡을 좀 들려 달라고 했다. 그가 마지못해 피아노를 연주하는데 첫 멜로디가 내 심장을 쳤다. 지금의 '소녀'였다. 나한테 곡을 줄 수 있느냐고 묻자, 자기는 아마추어여서 히트도 안 될 거라며 겸연쩍어했다"고 한다. 이렇게 만난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해 서울 수유리 자취방에서 밤을 새우며 작업했다. 6개월에 걸쳐 8곡을 완성한 이영훈은 "쉬운 노래를 하나 만들어 보겠다"고 하더니 30분 만에 한 곡을 만들었다. 그 곡이 바로 '난 아직도 모르잖아요'였다. 이문세의 3집 대표곡이 된 이 노래는 KBS의 '가요 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였으며, 동시에 라디오 인기가요 차트에서 10주 연속 1위를 거머쥐는 대히트곡이었다. 이 히트로 이영훈은 대한민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작사가, 작곡가로 부상하게 된다.

'노래와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화성학 기초 정리(보완)  (0) 2023.08.21
흑인 민요 합창 nwc (직역)  (0) 2023.08.20
우리 가곡 합창 nwc 목록  (36) 2023.08.17
[I Got Rhythm] 합창 nwc (직역)  (0) 2023.08.15
[From A Distance] 합창 nwc (직역)  (4) 2023.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