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아닌 것을 설득하려 논리를 펼 필요가 아예 없다. 그들의 귀가 아예 닫혀 있고 그들의 뇌가 이미 들어 간 것으로 포화되어 있기 때문에 진실이나 진리에 대한 관심조차 없다. 이미 탐욕과 위선에 찌들대로 찌든 그들을 인간으로 대해 설득하려 하는 행태가 아예 어리석은 일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양이 늑대를 논리로 설득하는 꼴이다.
지금 도처에 깔린 인간 아닌 것들의 개똥소리(Bullshit)를 언제까지 계속 들어야 하나?
더불어당의 후쿠시마 왜곡, 양평 고속도 시비... 태생부터 지금까지... 짜증이 난다. 이런 것들을 어디 버리데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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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정태의 시사哲] 라퐁텐 우화 '늑대와 어린 양' 프랭크퍼트 '개소리에 대하여'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어린 양이 시냇가에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그때 늑대 한 마리가 나타나 어린 양에게 호통을 쳤다. "이 어린놈아! 내가 마실 물을 왜 흐리고 있느냐?" 어린 양은 자기가 물을 마시던 위치와 늑대가 선 곳을 찬찬히 살펴본 후,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 "저는 하류에 있는데 어떻게 제가 늑대님이 마실 물을 흐릴 수 있나요?"
늑대는 말문이 막혔다. 하지만 순순히 포기하지 않고, 머리를 굴리더니 다시 호통쳤다. "네 이놈, 어디서 봤다 했더니, 작년에 날 욕하고 도망갔던 그 녀석이로구나!" 어린 양은 기가 막혔다.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요?" 또 할 말이 없어진 늑대는 잠시 고민 후 외쳤다. "그렇다면 네 형이 날 욕했구나. 그 대가로 널 잡아먹을 테니 원망하지 마라!"
프랑스의 우화 작가 장 드 라퐁텐이 쓴 '늑대와 어린 양'의 내용이다. 늑대는 황당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폭력을 정당화하려 든다. 어린 양은 논리적으로 대응하여 상대방 말문을 막는다. 하지만 늑대가 한 말이 거짓임을 폭로해도 소용이 없다. 반성도 사과도 하지 않는 늑대는 또 다른 이상한 소리를 하며 계속 어린 양을 위협한다. 이런 식의 말하기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주말 아침부터 점잖지 못한 단어를 보여드리는 필자를 양해해주시길. 프린스턴 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인 미국의 분석철학자 래리 G. 프랭크퍼트에 따르면, 늑대가 하는 말은 '개소리(bullshit)'다. 방금 보신 그 단어가 맞다. '개소리'. 프랭크퍼트는 1986년 '개소리에 대하여(On Bullshit)'라는 짧은 논문을 펴냄으로써 일상 언어 사용에 대한 철학적 분석의 한 획을 그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은 이재명이다'라는 말을 고찰해 보자. 저 말이 거짓말이 되려면 말하는 사람은 두 가지를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첫째,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이라는 사실. 둘째, 상대방에게 잘못된 정보를 전달하고 있다는 본인의 행위. 요컨대 참과 거짓을 구별해야 하고, 자신이 그 선을 넘는다는 인식이 있어야 거짓말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개소리를 하는 사람은 자기 말이 진리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다. 영어 단어 'bullshit'만 봐도 그렇다. 철학자는 그 안에 포함된 '똥(shit)'이라는 단어를 성찰한다. "대변은 설계되거나 수공예로 만드는 게 아니다. 그것은 그냥 싸거나 누는 것이다." 개소리 역시 마찬가지다. 개소리는 '싸지르는' 것이다. 똥과 마찬가지로 "어떤 경우에도 '공들여 만든' 것은 아니다."
영어 단어를 통한 분석이지만 우리말에서도 같은 표현을 찾아볼 수 있다. 누군가가 개소리를 내뱉는다. 그 말을 듣는 우리는 짜증을 낸다. '이게 말이야, 방귀야?' 사람 입에서 공기와 함께 언어를 내뱉고 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아무것도 없다. 전혀 공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항문에서 나오는 방귀와 다르지 않다. 말하는 사람 스스로가 거짓말을 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들이지 않는다. 가끔 거짓말쟁이들도 느끼는 작은 양심의 가책조차 없다. 아무렇게나 내뱉고 되는 대로 지껄이면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릴 뿐이다.
개소리는 거짓말보다 윤리적으로 더 해롭다. 거짓말은 참과 거짓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을 전제로 하는 반면, 개소리는 그조차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관심에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것, 즉 사태의 진상이 실제로 어떠한지에 대한 무관심", 그것이 프랭크퍼트가 말하는 개소리의 본질이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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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 Bullshit: 직역하면 쇠똥. 물론 실제 의미는 '개소리', '헛소리', '좆같은', '허튼 소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고 '지랄 났네', '이런 ㅆ발', '말도 안 돼' 정도의 의미로도 쓰인다. 원명의 Shit를 살려서 "개똥 같은 소리", "똥덩어리" 정도로 번역해도 무방하다. '지랄'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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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공포인-공자도 포기한 인간들
【청주일보】 김흥순 2021.03.10
광이부직(狂而不直) 방자하면서 정직하지 않다
하우불이(下愚不移) 아주 어리석고 못나 늘 그대로 있고 발전하지 못한다
자왈 광이부직하며 동이불원하며 공공이불신을 오부지지의로라.(子曰 狂而不直 侗而不愿 悾悾而不信 吾不知之矣) -논어, 태백 제16장-
공자는 말했다. “거만한데 곧지도 못하고, 어리석은데 공손하지도 못하고, 무능한데 신실함도 없다면, 나는 이런 사람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알 수가 없다.” (논어 태백16)
子唯上知與曰 下愚不移(자왈 유상지여 하우불이) (논어(論語) ‘양화편(陽貨篇)’ 17-2~3)
길을 걷던 공자가 하루는 길 옆에서 똥을 싸는 사내를 봤다.
공자는 함께 있던 제자를 시켜 그 사내를 자신에게 데려오게 했다.
“너는 짐승이 아닌 이상 어찌하여 가릴 것, 못 가릴 것 구분을 하지 못하느냐. 너는 도대체 사람이냐, 짐승이냐.” 공자는 힐난의 말과 함께 엄청나게 사내를 꾸짖었다.
그러자 사내는 부끄러움에 머리를 감싸 쥐고는 줄행랑을 놓아버렸다.
다시 순행(巡行) 길에 오른 공자. 이번엔 길 한가운데서 똥을 싸는 또 다른 사내를 만난다.
하지만 무슨 이유 때문인지 공자는 화를 내기는커녕 제자에게 그 사내를 피해서 가자고 말한다. 제자는 길 가운데서 똥을 싸는 저 사내가 더 나쁜 놈인데 왜 피해 가냐고 물었다.
그러자 공자는 말한다. “길 옆에서 똥 싼 사내는 그나마 양심은 있어 가르치면 되지만 저 놈은 아예 양심 자체가 없는데 무엇을 어찌 가르칠 수 있겠느냐.”
사리분별력 없이 거만하게 굴면서 정직하지도 않은 사람,
무지하면서 예의 없고 경망스러운 사람,
무능하면서 신실(信實)하지도 않은 사람,
어리석고 못나 변화가 없는 사람,
습관이 더럽게 물든 사람 등을 공자는 가르치기를 포기했다.
바뀌지 않는 사람의 예로 '상지(上知)', 즉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우수하고 총명한 사람을 짝처럼 붙여 놓은 것이다. 그럼 상지와 '하우(下愚·아주 어리석고 못난 사람)'는 왜 바뀌지 않는다고 했을까.
그 이유는 그들이 바뀌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바뀌려고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잘난 사람은 잘났으니 그렇다 치고 못난 사람이 요지부동인 이유는 지레 포기하기 때문이다.
'논어집주'에 따르면 하우는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자포(自暴)'하고 '자기(自棄)'하는 사람이다. '자포'는 스스로 자신을 포기한 사람, '자기'는 스스로 자신의 몸을 버리고 돌아보지 않는 사람이다.
소위 엘리트라며 나만이 정의라는 확증 편향에 있는 자의 오만함, 그가 만들어낸 거짓에 놀아나는 우매함, 마치 종교 같은 믿음. 상지와 하우는 그래서 통하는 사이다. 극과 극은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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