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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치속 행복

박정희 대통령 일화 2개

by 눈솔-강판순 2022. 12. 18.

박정희, M16...그리고 심슨의 뇌물

예지수목원 2020.7.26 
중국의 등소평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가장 존경한다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
아래글은, 미국의 맥도널드 더글라스 社(M16제조사)의 국제담당 중역 "데이빗 심슨氏의 증언"을 한글로 번역한 글입니다.​

■제목: "故 박정희 대통령의 뇌물 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랑! 
글: 데이빗 심슨(美 맥도널드 더글라스社 국제담당 중역)​

[배경 설명] 정리
1. 한국의 월남전 파병으로 인해, 소원했던 미국과의 관계가다시 우호적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한국은 월남파병의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많은 부분을 이전받게 된다. 그중 하나가 당시로서 세계 최고 수준의 개인화기인, "M-16 자동소총" 바로 그것이었다.
2. 그동안 한국의 개인 화기는, 기껏 단발식 카빈 소총과 M1소총이 전부였다. 
3. 파병 조건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의 총기제조 수출업체인 맥도날드 더글라스社의 M16였다.
4. 맥도날드 더글라스社는, 자사의 국제담당 로비스트 중역인 데이빗 심슨氏를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내서, 국제관례에 따라 의례적인 감사 인사 치례를 하게 된다.​

[심슨氏의 글]
"1960년대초 어느 해 여름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해는 유난히도 무더웠던 여름이었다. 나는 한국의 청와대를 방문하여 대통령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박정희 대통령이 계신 집무실로 바로 가게 된다. 
그리고 그 비서관이 열어주는 대통령 집무실 안의 광경은, 나의 두 눈이 놀랄 만큼 크게 의심케 만들었다.
대통령 집무실엔 커다란 책상 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서류더미 속에서, 자신의 몸보다 몇 배는 더 커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서, 한손으로는 부채질을 하고, 다른 한손으로는 볼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는 내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통령궁 집무실 내에서 무더운 여름을, 이마에 땀을 줄줄 흘리면서 부채 하나로 이겨내고 있던 한국의 대통령을 보게 된 것이다.
아무리 빈국의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한 나라의 대통령의 모습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그는 그렇게 여름날 부채질을 하면서 나랏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심 놀라워하고 있던 그 순간! 박정희 대통령이 일하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 순간!
나는, 내가 그의 강렬한 눈빛을 보았을 때, 지금까지 상상했던 나의 모순이 순식간에 내 안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외국에서 손님이 온 것을 알고, 예의를 차리기 위해 벽에 걸린 양복 저고리를 막 걸치는 중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비로소 박 대통령이 와이셔츠 차림으로 집무를 보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미국 맥도널드社에서 오신 국제담당 데이빗 심슨氏가 각하를 면담하러 왔습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함과 동시에, 나는 박대통령께 정중한 예의를 갖추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소, 이리로 앉으시오."
한국에서 느껴보는 한여름날의 무더위 때문인지, 내가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긴장 탓인지..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매어진 넥타이로 손이 가고 있음을 알았다. (나는 긴장할 때는 넥타이로 손이 가는 버릇이 있다). 
"아! 내가 결례를 한 것 같소이다. 손님이 오는 걸 깜박했오.
나 혼자 있는 이 넓은 집무실에서, 그것도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에어컨을 튼다는 것은 큰 낭비인 것 같아서요..
나는 이 부채 하나면 충분하오. 이 순간에도 우리 국민들은 뜨거운 뙤약볕 아래에서 논밭일을 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나야 고생하는 우리 국민들에 비하면 신선놀음 아니겠소.."
"이보게, 비서관!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좀 트는 게 어떻겠나?"

나는 그제서야 미국 조야에서 나도는, 한국의 박 대통령은 강력한 카리스마로 국민들로부터 독재자란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를 따를 수밖에 없는 솔선수범하는 한 나라의 영도자라는 그 정평....,
나는 지금 그 소문을 대통령 집무실에서 직접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 흔한 에어컨 바람 하나 켜지 않고 나랏일 보는 대통령, 그러면서도 국민들이 논밭일을 하면서 흘리는 땀방울을 먼저 생각하는 박 대통령!
나는 지금까지 만나봐왔던 세계의 여러 후진국의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다른 대통령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의 말에 제대로 대꾸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외모와는 달리 그가 한없이 큰 거인 대통령임을 나는 가슴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 네.. 각하.."
이윽고 비서관이 나를 위해 에어컨을 작동하고서야, 비로소 나는 박 대통령과 한국군의 총기구매에 관한 업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할 수 있었다. 예정대로 나는 박대통령께 내가 한국을 방문한 목적을 그에게 이야기를 얘기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더글라스社의 M16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드립니다.
이번 이 결정이 한국군의 현대화와 국가방위에 크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에서 감사의 표시로 드리는 작은 성의이니 받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미리 준비해온 100만 달러 수표가 든 두툼한 봉투를 박 대통령 앞에 불쑥 내밀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게 무엇이오?"하면서 그는 봉투를 들어 그 내용을 살피기 시작했다.
"흠..100만 달러라...이 돈은 내 봉급으로는 3대를 걸쳐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큰 돈이구려.."
방문내내 차갑게만 느껴지던 그의 인상에서, 비로소 얼굴에 웃음을 띄웠다.
나는 그것을 보고서는, 역시 박대통령도 내가 만나본 다른나라 후진국의 대통령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그런 대통령임을 알고, 내심 실망감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리고 그 실망감이 처음 그에 대해 느꼈던 왠지모를 존경심과, 경이롭기까지 했던 내 느낌에 순간적으로 많이 동요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받아 주십시오"
박 대통령은 내 말에 잠시 웃음인지 모를 그런 표정을 지으시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잠시 동안 적막이 흐른 후 박 대통령은 나에게 말했다.​

"이보시오 심슨 선생! 하나만 물읍시다."
"예, 각하."
"이 돈 정말 내게 주는 것 맞소?"
"각하, 맞습니다."
"그래요 그럼 대신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각하."​

그러고는 박 대통령은 내가 준 수표가 든 돈봉투를 나에게 다시 내밀었다.
그리고 내게 되돌려준 봉투를 보면서, 의아해 하고 있는 나를 향해 그가 다시 말했다.​

"자! 이제 이 돈 100만달러는 내 돈이오! 내 돈이니까 내가 내 돈을 가지고 당신 회사인 더글라스社와 거래를 하고 싶소"
"지금 당장 이 돈의 값어치만큼 M16 소총을 더 갖다 주시오!"
"나는 돈보다는 총으로 더 받았으면 하오, 심슨 당신이 그렇게 해주리라 믿소" 
박정희 대통령은 뜻밖에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왠지모를 내 생각의 부끄러움과 나의 작아짐, 그리고 한없이 크게 보이는 박정희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나는 그냥 그의 명령에 조아리는 신하가 된 느낌이었지만, 나는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에 몸을 떨어야 했다.​

"심슨, 당신이 내게 준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당신 돈도 아니오..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 월남전선에서, 조국의 부름을 받아, 피를 흘리며 싸우고 있는 내 아들들의 땀과 피와 바꾼 것이오. 그런 돈을 어찌 한 나라의 아버지인 대통령이, 자기 배를 채우는 데 사용할 수가 있겠소.
그러니 이 돈은 다시 가져가고, 대신 이 돈만큼의 M16 소총을 우리나라에 가져다 주시오!"​

나는 박 대통령의 신하가 된 기분으로 한없는 감동을 받아, 미국 더글라스社의 국제담당 중역으로서 처음으로 보람을 느꼈고, 큰 용기를 얻을 수 있게 되었고, 귀국하여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감동 받은 이야기들을 소상하게 보고하였고, 그 이야기는 미국 언론과 조야에 널리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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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의 당부 말에 나는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서 그에게 말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대통령 각하!...
반드시 100만달러 값어치의 소총을 한국으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때 나는 그 전과는 사뭇 다른 그의 미소 띤 순수한 웃음을 보았다.
한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한 집안의 부모님 같은 그런 인자한 한 아버지의 웃음을...​

그렇게 박 대통령 그에게는, 자국의 국민들이 곧 바로 자신의 자식들이요 형제들이라는 인식을 나에게 가르쳐 줬다.
내가 집무실을 나올 때 다시 양복 저고리를 벗으며, 조용히 손수 에어컨을 끄는 작지만 너무나 큰 거인!
참다운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보였다.​

배웅하는 청와대 비서관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경내를 다시 한번 둘러본 나의 눈에는, 한국은 머잖아 위대한 대통령으로 인해,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낯선 나라의 대통령에게 이렇게 감동을 받고 또 존경심을 느껴본 대통령은 없었다.​

이후 나는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미국내에서 친한파로 자리매김이 되어졌고, 나 또한 박정희 대통령 전도사임을 자임하고 나섰다. (끝).​

미국 더글라스 맥도날드(MD)社
국제담당 중역/ 데이빗 심슨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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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前 대통령의 눈물' 큰 반향
마이비즈니스 2018.12.26 

이 글은 육군사관학교의 김충배 교장이 생도 교육에 사용해 그동안 ‘육사교장의 편지’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실제 작성자는 예비역 장성인 김유복(金遺腹·79)씨. 그가 로터리코리아(한국로터리의 기관지)에 기고한 글은 “60대를 수구 골통이라 몰아붙이는 젊은이들이여! 이 글을 읽어 보렴”이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우리 대한민국의 장래를 짊어질 개혁과 신진의 주체, 젊은이 들이여!
여러분들은 5,60대가 겪은 아픔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대들은 조국을 위하여 과연 얼마만큼 땀과 눈물을 흘렸는가?
지금 여러분들이 누리는 풍요로움 뒤에는 지난날 5,60대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5.16혁명 직후 미국은 혁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을 인정한다면 아시아, 또는 다른 나라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에서였다. 그 때 미국은 주던 원조도 중단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은 존 에프 케네디.
박정희 소장은 케네디를 만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 백악관을 찾았지만 케네디는 끝내 박정희를 만나주지 않았다. 호텔에 돌아와 빈손으로 귀국하려고 짐을 싸면서 박정희 소장과 수행원들은 서러워서 한없는 눈물을 흘렸었다.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에 우리와 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려 대사를 파견해서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1억 4000만 마르크를 빌리는 데 성공했다. 
당시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 한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주고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고졸 출신 파독 광부 500명을 모집하는 데 4만6천이 몰렸다. 그들 중에는 정규 대학을 나온 학사 출신도 수두룩했다. 면접 볼 때 손이 고와서 떨어질까 봐 까만 연탄에 손을 비비며 거친 손을 만들어 면접에 합격했다.
서독 항공기가 그들을 태우기 위해 온 김포공항에는 간호사와 광부들의 가족, 친척들이 흘리는 눈물로 바다가 되어 있었다.

낯선 땅 서독에 도착한 간호사들은 시골병원에 뿔뿔이 흩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는 여자 간호사들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병들어 죽은 사람의 시신을 닦는 일이었다. 어린 간호사들은 울면서 거즈에 알콜을 묻혀 딱딱하게 굳어버린 시체를 이리저리 굴리며 닦았다. 하루종일 닦고 또 닦았다.
남자 광부들은 지하 1000미터 이상의 깊은 땅 속에서 그 뜨거운 지열을 받으며 열심히 일 했다. 하루 8시간 일하는 서독 사람들에 비해 열 몇 시간을 그 깊은 지하에서 석탄 캐는 광부 일을 했다.
서독 방송, 신문들은 대단한 민족이라며 가난한 한국에서 온 여자 간호사와 남자 광부들에게 찬사를 보냈다. 세상에 어쩌면 저렇게 억척스럽게 일 할 수 있을까? 해서 부쳐진 별명이 코리안 엔젤이라고 불리었다. 

 

▲ 1964년 12월 10일 독일 뤼프케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방독한 박정희 대통령 내외가 함보른 광산을 방문했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를 앞에 두고 박 대통령 내외는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르지 못했다. 왼쪽은 당시 함보른 광산 사장. /유재천씨 제공 [조선일보]

몇 년 뒤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초대로 박 대통령이 방문하게 되었다. 그 때 우리에게 대통령 전용기는 상상할 수도 없어 미국의 노스웨스트 항공사와 전세기 계약을 체결했지만, 쿠데타군에게 비행기를 빌려 줄 수 없다는 미국 정부의 압력 때문에 그 계약은 일방적으로 취소되었다.

그러나 서독정부는 친절하게도 국빈용 항공기를 우리나라에 보내주었다. 어렵게 서독에 도착한 박 대통령 일행을 거리에 시민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뜨겁게 환영해 주었다. 

코리안 간호사 만세!
코리안 광부 만세!
코리안 엔젤 만세!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은 창 밖을 보며 감격에 겨워 땡큐! 땡큐! 만을 반복해서 외쳤다.
서독에 도착한 박대통령 일행은 뤼브케 대통령과 함께 광부들을 위로, 격려하기 위해 탄광에 갔다.
고국의 대통령이 온다는 사실에 그들은 500 여명이 들어 갈 수 있는 강당에 모여들었다.
박 대통령과 뤼브케 대통령이 수행원들과 함께 강당에 들어갔을 때 작업복 입은 광부들의 얼굴은 시커멓게 그을려 있었다. 대통령의 연설이 있기에 앞서 우리나라 애국가가 흘러 나왔을 때 이들은 목이 메어 애국가를 제대로 부를 수조차 없었다.

대통령이 연설을 했다.
단지 나라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이역만리 타국에 와서 땅속 1000 미터도 더 되는 곳에서 얼굴이 시커멓게 그을려 가며 힘든 일을 하고 있는 제 나라 광부들을 보니 목이 메어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우리 열심히 일 합시다.
후손들을 위해서 열심히 일 합시다.
열심히 합시다.

눈물에 잠긴 목소리로 박 대통령은 계속 일하자는 이 말을 반복했다.
가난한 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이역만리 타국 땅 수 천 미터 지하에 내려가 힘들게 고생하는 남자 광부들과 굳어버린 이방인의 시체를 닦으며 힘든 병원일 하고 있는 어린 여자 간호사들. 그리고, 고국에서 배곯고 있는 가난한 내 나라 국민들이 생각나서 더 이상 참지 못해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소리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 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 여사의 옷을 잡고 울었고, 그분의 옷이 찢어 질 정도로 잡고 늘어졌다. 육 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 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브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 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 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브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연설이 끝나고 강당에서 나오자 미쳐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 여러 광부들이 떠나는 박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를 붙잡고 우릴 두고 어디가세요. 고향에 가고싶어요. 부모님이 보고싶어요 하며  떠나는 박대통령과 육 여사를 놓아 줄 줄을 몰랐다.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 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 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서독 국회에서 연설하는 자리에서 박대통령은 

돈 좀 빌려주세요. 한국에 돈 좀 빌려주세요.
여러분들의 나라처럼 한국은 공산주의와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이 공산주의자들과 대결하여 이기려면 분명 경제를 일으켜야 합니다. 그 돈은 꼭 갚겠습니다. 저는 거짓말 할 줄 모릅니다.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대로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을 이길 수 있도록 돈 좀 빌려주세요. 를 반복해서 말했다.

당시 한국은 자원도 돈도 없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였다.
유엔에 등록된 나라 수는 120여 개국, 당시 필리핀 국민소득 170불, 태국 220불 등...
이때, 한국은 76불이었다. 우리 밑에는 달랑 인도만 있었다.
세계 120개 나라 중에 인도 다음으로 못 사는 나라가 바로 우리 한국이였다. 
1964년 국민소득 100달러! 이 100달러를 위해 단군 할아버지부터 무려 4,600년이라는 긴 세월이 걸렸다.

이후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우리 보수 수구세력들은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들어  외국에 내다 팔았다.
동네마다 엿장수를 동원하여 머리카락 파세요! 파세요! 하며 길게 땋아 늘인 아낙네들의 머리카락을 모았다.
시골에 나이 드신 분들은 서울간 아들놈 학비 보태주려 머리카락을 잘랐고, 먹고 살 쌀을 사기 위해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래서 한국의  가발산업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싸구려 플라스틱으로 예쁜 꽃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곰 인형을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전국에 쥐잡기 운동을 벌렸다. 쥐털로 일명 코리안 밍크를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돈 되는 것은 무엇이던지 다 만들어 외국에 팔았다. 이렇게 저렇게 해서 1965년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세계가 놀랐다. 저 거지들이 1억 달러를 수출해하며 한강의 기적이라고 전 세계가 경이적인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봤다. 조국근대화의 점화는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들과 광부들이었다. 여기에 월남전 파병은 우리 경제 회생의 기폭제가 되었다. 참전용사들의 전후 수당 일부로 경부고속도로가 건설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한반도에 동맥이 힘차게 흐르기 시작됐다. 

우리가 올림픽을 개최하고, 월드컵을 개최하고, 세계가 우리 한국을 무시하지 못하도록 국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대들이 수구 보수세력으로 폄훼 하는 그 때 그 광부와 간호사들, 월남전 세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명심할 것은 그 때 이방인의 시신을 닦든 간호사와 수천 미터 지하 탄광에서 땀흘리며 일한 우리의 광부, 목숨을 담보로 이국전선에서 피를 흘리는 우리 국군장병, 작열하는 사막의 중동 건설현장에서, 일한 5, 60대가 흘린 피와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그대들 젊은 세대들이 오늘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반전과 평화데모를 외치며 거리로 몰려나와 교통질서를 마비시키는 그대들이 과연 아버지와 할아버지 세대를 수구세력으로 폄훼할 자격이 있는가... 그대들이 그때 땀흘리며 일한 오늘의 5,60대들을 보수 수구세력으로 폄훼 하기에 앞서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라.
국가경영을 세계와 미래라는 큰 틀 전체로 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 낳은 내일의 삶을 위해 오늘의 고통을 즐겨 참고 견뎌 국민소득 4만불대의 고지 달성 때까지는 우리들 신,구 세대는 한 덩어리가 되어야 한다. 이제 갈라져 반목하고 갈등하기에는 갈 길이 너무 멀다.
이제 우리 모두 한번쯤 자신을 돌아보며 같은 뿌리에 난 상생의 관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번 뭉쳐보자.

우리 모두 선배를, 원로를, 지도자를 존경하고 따르며, 우리 모두 후배들을 격려하고, 베풀고, 이해 해주면서 함께 가보자.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에 더욱 밝은 빛이 비추어 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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